11세기 유럽국제무역의 중심지였던 지중해의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은행이 탄생했다. 유가증권과 주식거래 같은 근대적개념과 세계최초의 은행시스템을 만들어 명실공히 은행업의 개척자역할을 한것은 1609 설립된 암스테르담은행이었다. 암스테르담은행은 계좌를 가진 상인으로부터 금·은을 예치받고 표준화된 <은행화폐>를 지급했다. 통화가 표준화되자 환어음이 활성화됐다. 나중에는 동인도회사주식을 담보로 대출해주기 시작했다. 1688~89 윌리엄·메리부처가 영국에 들어갈때 전쟁자금을 빌려준 유대인은행업자들도 함께 영국에 자리잡았다. 암스테르담동인도회사는 영국동인도회사에게 밀리고있었으며 사업체와 은행을 지킬 국가와 군사력이 있어야했는데 이런 이유로 네덜란드의 은행업자들은 점차 영국으로 이전했다. 윌리엄은 이어진 프랑스와의 전쟁비용을 은행업자들에게 요청했고 은행업자들은 자금을 빌려주는 대가로 은행권을 발행할수 있는 민간은행설립허가를 요구했다. 1694.7 영국은행이 설립됐다. 1800년대초 화폐수요가 떨어지면서 1809~30 지방은행331개가 파산하는 상황에서 영국정부는 1844 <은행허가법>을 제정해 영국은행의 화폐를 법정화폐로 지정했다. 영국은행의 최대주주는 로스차일드가였다. 1600년대 자본주의와 부르주아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되기전 절대왕정의 권위로 당시 큰 규모의 자금을 운용할수 있었던 유대인들에 의해 발권은행이 만들어진것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1700년대말~1800년대 미국의 사정은 좀 달랐다. 미국건국초기 은행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미국인들이 적지않았다. 대금업은 인류역사적으로 민중에게는 분노의 대상이었다. 미의회는 미국독립초기 전쟁자금과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 민간자본으로 미국은행을 설립하는것을 허가했다. 1830년대 잭슨대통령은 2미국은행에 대해 부정적입장을 피력했다. 집권후 은행에 채무를 갚아버리고 법령만료전에 2미국은행을 폐지했다. 링컨대통령은 1861 남북전쟁을 벌이면서 전쟁자금을 위해 정부발행화폐로 <그린백>을 도입했는데 전쟁이 끝난 직후 암살당했다. 1960년대 케네디대통령도 정부발행화폐를 추진하다가 암살당했다. 1900전후 경제공황의 여파에 금융자본세력이 중앙은행의 필요성을 제기해 나서면서 1913 미의회는 영국은행형태로 민간은행들이 참여하는 연준(연방준비제도 Fed)설립을 결정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금을 주고 연준으로부터 화폐를 발급받는다. 재정적자는 연준의 민간은행들에게 빌리게 된다. 그들이 정하는 금리에 따라 국가세금으로 이자를 지불한다. 금리가 높아지면 이자부담이 커진다. 영국왕들은 원금을 갚지않았지만 통화량이 늘어난다는것은 채무가 늘어난다는것이고 그만큼 이자부담이 커졌다. 원금을 상환하면 통화량이 줄어들어 시장의 통화수요를 충족시킬수 없게 된다. 통화발행권을 쥔다는것은 인플레이션택스, 다시말해 그만한 부를 쥐는것과 다름이 없다.